사회과학원 연구사 박세연
  나는 오늘 대학동창생으로부터 결혼식초청장을 받았다.
  (국제학술잡지에 론문을 발표하느라 여념이 없던 지선이가 드디여 시집을 가는구나…)
  살며시 미소가 피여오르는속에 문득 나의 또래들이 하나, 둘 달라져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씬하고 애리애리하던 처녀들, 치렁치렁 어깨우에 넘실대던 머리단장들이, 뾰쪽한 구두뒤축을 때깍거리던 가벼웁던 발걸음들이 이제는 달라져가고있다.
  바람에 웃는 문풍지를 보고도 웃음을 못참던 그들이, 내리는 눈송이를 두손벌려 담아 혀끝에 대보던 순진하던 그 애티들은 침착한 눈빛속에 가라앉고 표정도 몸가짐도 어느덧 듬직해졌다.
  이제는 우리 또래들이 거의나 머리를 얹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바쁘게 남먼저 발전소건설장으로 달려갔던 향심이도 돌격대의 소대장과 사랑의 언약속에 결혼을 하였고 석사론문을 끝내기 전에는 시집을 가지 않겠다던 수정이도 석사칭호를 받은후 출가하였다.
  조국이 가리키는 화살표가 그어진 지명들에 뚜렷한 로동화자욱을 새기고 탐구의 자욱을 남기며 처녀의 고운 꿈을 조국의 큰 뜻에 합쳐온 우리의 처녀시절이였다.
  누구나 그렇게 한생을 처녀로만 살고싶어하였다.
  하지만 어찌하랴.
  흐르는 세월과 함께 시집도 가야하고 어머니도 되여야 하는것이 생활의 법칙인데야…
  아마도 나무한그루 제손으로 심지 않은 이 거리라면, 우리의 더운 땀이 방울방울 슴배인 이 땅이 아니라면 새로운 생활의 가구를 떳떳이 옮겨올수 없을것이다.
  물려주고싶은것이 있는 이 땅이기에, 심장을 바쳐 뜨겁게 사랑하는 이 땅이기에 우리 또래들이 이제는 어느덧 자식을 가진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는것이다.
  우리는 이 시절이 때없이 그리워질것이다.
  그것은 단지 젊은 시절의 자기 모습이 그리워서가 아니다.
  그 시절에 조국에 바친 아낌없는 열정과 더운 땀과 지혜, 그 모든것의 값높은 청춘이 있기때문이다.
  하기에 우리 또래는 처녀시절이 지났다고 자기의 삶에 하강선을 긋지 않으리라.
  다시는 한데 모아놓을수 없는 지난 시절의 풍경이지만 이 시절을 돌아보며 긍지로웠던 처녀시절처럼 영원히 수평으로 인생의 먼길을 보람차게 갈것이다. 나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