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옷도안창작에 인생의 전부라고 할수 있는 40년간을 바쳐오고있는 한 교원이 있다. 리유미 평양미술종합대학 교원(69살 공훈예술가 교수 박사)은 《조선옷이야말로 세계의 자랑이고 한생의 사랑》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땅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그는 옷만들기를 전업으로 하던 어머니에게서 조선옷에 대한 선천적이라고도 할수 있는 재능을 물려받았다. 재봉기를 돌리는 어머니곁에서 자투리천들로 인형에 옷을 입혀가던 시절에 그는 벌써 색과 형태, 무늬에 대하여 감각으로 터득하게 되였다. 어머니가 뉴똥으로 만들어준 치마저고리는 아무리 수수해도 보는 사람 누구나가 멋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학교에서 공부하던 그는 방과후면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에서 운영하는 오후야간학교에도 다니였는데 예술소조공연을 할 때면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을수 있다는 기쁨으로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고 한다. 자기가 입은 멋있는 옷에 대한 자부는 어머니가 하는 일에 대한 부러움을 낳았고 궁극에는 어린 그에게 조선옷도안가의 꿈을 품게 하였다.

생계유지를 위해 마지못해 양재업을 해온 어머니는 자기가 겪는 고생을 딸에게도 시킬수 없어 재봉기앞에 마주앉으려는 딸만 보면 성을 내기가 일쑤였고 나중에는 매까지 들었다고 한다. 1960년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겨 행복한 생활을 누리게 될수록 어머니는 고생많던 그 나날이 생각키워 딸에게 양재업과 거리가 먼 학문을 시키고싶어하였다. 그러나 조선옷에 대한 딸의 매혹과 사랑은 의학전문학교도 중퇴하고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마저 외면하게 하였다.

대학시절에 그가 그린 두편의 조선화는 어느 한 미술전시회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게 되였다. 1971년 평양미술대학(당시)을 졸업하면서 그는 세계에 자랑할만 한 조선옷을 더욱 발전시킬데 대하여 주신 위대한 주석님의 교시에 접하고 어릴 때부터 품어온 조선옷도안창작의 길에 나서게 되였다.

그 나날에 그는 조선옷의 우수성을 더욱 발양시키는데서 자기식의 일가견을 가지게 되였다. 대학의 강좌장으로 사업하면서 리유미선생은 교수사업을 하는속에서도 우아하고 화려하며 독특한 수많은 조선치마저고리도안들을 창작하였으며 그 과정에 많은 옷도안가들이 조선옷계를 풍만하게 하는 인재들로 자라났다.

리유미선생은 독특하고 오랜 력사를 가진 민족유산의 하나인 조선옷에 대하여 세상에 사람들이 옷을 입기 시작한 때부터 우아래로 나누어진 옷을 입은것은 조선민족뿐이라고 하였다. 지금 유럽의 양복도 바로 조선민족이 입은 우아래로 나뉜 옷에 연원을 두고있다고 그는 주장하고있다. 옷의 형태와 색갈은 물론 편리성에 있어서도 세계의 그 어느 민족옷보다 우수하다고 하면서 그는 조선민족의 옷차림문화를 통하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을 엿볼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조선옷창작에서 민족적인 전통을 더 잘 살리면서 고상하고 아름다운 색갈과 독특한 형태미, 무늬장식 등의 조화에 각별한 관심을 돌리고있다. 리유미선생은 조선옷도안창작이 고유한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옷을 지키고 의상분야에서 민족의 얼을 고수하는 자못 중요한 사업이라고 하면서 조선옷이 개성이 더욱 뚜렷하고 사람들의 생활에 보다 접근한 옷으로 발전되여나갈것이라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