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시에서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력사유적들을 원상대로 유지관리하기 위한 사업이 추진되고있다. 한 관계자는 시에 120여개의 력사유적들이 있다고 하면서 해당 지역의 면적 대 유적수를 기준으로 보면 개성시가 전국적으로 제일 비중이 높은곳들중의 하나이라고 한다. 그중에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12개의 대상들이있다.
   남대문과 성균관, 칠릉, 명릉, 경효왕릉, 왕건왕릉, 선죽교, 표충비, 만월대, 숭양서원, 개성성, 첨성대들이다. 개성지구에는 국보급 유적들도 많다. 남대문과 관음사, 성균관과 숭양서원, 개성성과 만월대터, 발어참성, 대흥산성 등은 국보유적으로 등록된 27개 대상들중 그 일부이다.
   시에서는 력사유적들에 대한 정기적인 보수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있다. 지난해 봄철국토관리총동원기간에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최고교육기관이였던 성균관강의실인 명륜당의 부문보수를 진행하였다. 한편 고려박물관의 내부조명을 LED화하여 시민들과 해외동포, 외국인들을 비롯한 참관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있다. 왕건왕릉의 산당집 지붕을 보수하고 칠릉의 축대들을 개축하였으며 개성성의 일부 구간을 고쳐 쌓았다. 령통사앞을 흐르는 개울의 제방을 다시 쌓고 경선원 등의 기와들을 보수하였으며 녀궁암, 마애불탐승로 계단들도 보수하였다. 박연폭포명승지의 주차장앞, 북문앞 석축부분을 보수하고 박연폭포와 령통사를 오가는 도로도 수리하였다. 남대문을 비롯한 6개 대상들에 록색유지기간이 오랜 새 품종의 잔디를 심었다.
   한 일군은 민족문화유산보호사업에 관계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물론 일반시민들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가하고있다고 한다. 많은 주민들이 력사유적보호관리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있다. 어느 한 지역에서 발굴된 성돌에 새겨진 수자를 두고 군중적인 평가사업이 있었는데 한 로인에 의하여 그 수자가 려현진성의 성돌이라는것과 성벽기초로부터 성돌의 위치를 보여주는것이라는것이확인되였다.
   력사유적들을 담당관리하는 기관, 기업소, 협동농장과 학교의 일군들과 근로자들, 교원, 학생들도 유적보호관리사업에 열성껏 참가하고있다.
최근 안화사의 개건사업이 전군중적인 참가밑에 진행되였다. 안화사의 리승찬승려(70살)는 절의 기본건물인 대웅전과 오백전의 기와, 서까래를 교체하고 단청을 수복하였다고 한다.
   개성시인민위원회의 주관하에 시안의 여러 기관, 기업소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수개월간의 개건에 참가하여 애국의 열정을 발휘하였다. 세멘트와 목재, 석재 등 건설자재보장을 선행하면서 공사를 일정대로 다그쳐 마감단계에 이르렀다. 시안의 미술가들을 비롯한 창작가들도 단청수복을 비롯한 사업에 참가하였다.
   개건사업은 1987년에 있은 전면적인 대보수이후 근 30년만에 진행되고있다.
   1990년 안화사는 전국적인 중요불교행사장소로, 외국인들과 해외동포들의 참관지로 지정되였다. 리승찬승려는 매해 성탄절과 성도절, 열반절들에 불교행사들이 진행되고있다고 한다. 안화사는 대웅전과 5백라한이 들어있는 오백전, 승방, 7층돌탑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삼국을 통일한 고려태조 왕건이 930년 자기 사촌동생의 명복을 빌기 위해 처음 안화선원이라는 이름으로 절을 세웠다. 절의 이름을 정국안화사라고도 하였는데 나라를 평온하게 하기를 비는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한다. 1118년 크게 확장되면서 안화사라고 불리우게 되였다. 민족고전인 《파한집》에 의하면 고려말까지 건물의 웅장함과 단청의 화려함에 있어서 전국적으로 으뜸이였다고 한다.
   오백전은 부처가 불교경전을 전파하기 위해 키워낸 제자들인 5백명 라한 하나하나의 모습들을 형상한 절이다.
   리승찬승려는 일제가 《조선민족의 고유한 민족성을 말살하고 조선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불교건축물에도 저들 사무라이민족의 <우월성>과 <동조동근>, <내선일체>의 사상을 박아넣도록 책동하였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시민들 특히 새 세대 청년들은 인류문화발전에 끼친 일본제국주의의 죄행에 대해 증오심을 금치 못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