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상해국제도자기예술박람회에서 공훈예술가 우철룡과 우복단이 창작한 도자공예 《잉어무늬투각장식꽃병》과 도자공예《포도무늬호로주전자》에 최우수창작상과 동상이 수여되였다.
   이번 박람회에서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과시한 이들은 고려청자로 국내뿐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김일성계관인, 인민예술가 우치선의 자녀들이다.
   우치선은 13살부터 흙과 불과 함께 살아오면서 고려청자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유명한 고려청자상감기법을 완성시킴으로써 세계적으로 천하일품의 하나로 이름떨치는 고려청자발전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다.
   도자기애호가들은 도자공예들에 우치선이라는 이름이 새겨진것만 보면 그 형태와 무늬가 어떻든 무작정 샀다.
   그가 84살을 일기로 창작현장에서 순직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다시는 우치선의 도자공예를 볼수 없게 되였다고 하면서 못내 서운해하였다.
   그러나 고려청자에 바쳐진 아버지의 넋은 자식들에 의하여 그대로 이어졌다.
   주체77(1988)년 막내아들 철룡이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만수대창작사 도자기창작단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하게 되였다.
   딸 우복단은 그보다 4년전에 같은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있었다.
   어느해인가 만수대창작사를 찾아오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한 창작단에서 아버지와 자식들이 함께 일하는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가족창작실을 내오도록 해주시였다.
   우치선은 늘 자식들에게 도자공예를 하자면 우선 미술을 알아야 하고 흙과 불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식들이 현지에 나가 여러가지 도안들과 문양, 도자기형태를 창작해가지고 오면 가족창작실에서는 언제나 열띤 합평회가 벌어지군 하였다.
   철룡은 고려청자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데만 만족하지 않았다. 고려청자에 현대적미감을 담고싶었다.
   사색끝에 착상이 떠오르면 지체없이 빚어보았다. 그러다나니 외출복이 그대로 작업복으로 되는 때가 드문했다.
   한번은 그가 자기딴에는 훌륭하게 빚어졌다고 생각한 《목란꽃상감청자 꽃병》을 아버지앞에 내놓은적이 있었다. 꽃병을 유심히 살펴보던 아버지는 머리를 흔들며 그것을 바닥에 내던졌다.
   《이것은 나에게 안기는 아픈 매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높이를 따르려면 아직 너무도 멀었다고 생각했다.》고 철룡은 회억했다.
   그 일이 있은후 철룡은 아버지와 말없는 경쟁을 걸었다.
   형태, 색갈, 문양에서 전통적인 고려자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더욱더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풍부한 미감과 발달된 형태감각, 기발한 구성능력과 창발성을 가지고 창작한 철룡의 도자공예들은 더욱 세련되여갔다.
   1989년 일본에서 진행된 《현대고려청자와 회화명인전》과 1998년 북남미술전람회에서 그의 작품들은 관람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때 그 누구보다도 기뻐한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고려청자의 전통적인 장식기법인 인장무늬를 위주로 하면서 현대적미감에 맞게 독특한 형태와 겹상감장식기법들을 재치있게 활용한 그의 작품들은 국내외에서 대인기를 끌었다.
   딸 우복단도 고려청자에 자기의 재능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우철룡과 우복단이 창작한 도자공예들은 여러 국제도자기박람회들에 출품되여 아버지의 이름과 함께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지난 20여년간 철룡이 창작한 《란초무늬부각청자꽃병》, 《호박무늬 청자단지꽃병》,《은방울꽃장식꽃병》을 비롯한 20여점의 도자공예와 복단이 창작한 《신선어 투각장식상감꽃병》,《구름과 학장식상감꽃병》을 비롯한 10여점의 도자공예는 국가소장품으로 등록되였다.
   이제는 이들의 나이도 50을 넘겼다. 현재 우치선의 맏손자 우영진이 그들과 함께 가족창작실에서 일하고있다. 철룡과 복단의 아들들은 지금 평양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있다.
   고려청자의 넋은 이렇게 련련히 이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