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직사범대학 최남순
  그날 교장선생님이 교수참관을 들어온 국어시간에도 나는 선생님이 제시한 글짓기를 학습장에 다 써놓고도 발표를 못 하고있었다.
  교수참관을 끝내고 교실을 나가려던 교장선생님이 문득 나에게 다가와 학습장을 보자고 하시는것이였다.
  교장선생님은 몹시도 기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눈빛은 무심히 지나던 모래밭에서 무엇인가 반짝이는것을 찾아본 사람의 눈빛이였다.
  선생님은 말없이 나의 등을 두드려주시고는 학습장을 가지고 교실을 나갔었다.
  그런데 오후시간이 되자 학교속보판에는 나의 작문이 나붙어있었다.
  내가 나서 난생처음으로 받아본 《표창》이였다.
  소학교의 천진한 소꿉동무들이 나의 작문을 한자한자 소리내며 읽어내려갔다.
  그 목소리를 따라 내 작은 심장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콩콩 뛴다는것도 모르고…
  어린 마음에도 나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나도 할수 있다! 나도 잘할수 있다!》
  아이들이 부러워하였다. 
  선생님이 나를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다음부터는 선생님이 수업때면 나를 자주 지명해주었다.
  은연중 나에게도 자신심이라는것이 생기고 늘 입속말로 대답하던 버릇은 나를 잊어버리고 자기 갈데로 영영 가버렸다.
  나는 그때는 미처 몰랐다. 
  제2의 능력이라는 인생의 귀중한 능력인 자신심이라는것이 나에게서 뿌리내리고 자라나고있다는것을.
  자라면서, 또 다 자라 일하면서 나는 힘에 부치는 학습과제나 일감과 마주칠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은 그날에 나의 작문이 나붙었던 소학교 속보판앞에 서보군하였다.
  그러면 마음속으로 어릴적의 그 목소리로 웨쳐보군 하였다.
  《나는 할수 있다! 나는 잘할수 있다!》
  그때부터 나는 교장선생님과 마주치면 활짝 웃으면서 인사하고도 늘 반짝이는 눈동자로 다 자란 자식을 바라보는듯한 선생님의 눈길과 꼭 마주치고야 지나치군 하였다.
  그러나 그때에는 다 몰랐다.
  부모들도 미처 몰랐던 나의 재능을 찾아주고 닦아주려고 교장선생님이 얼마나 마음을 기울였으며 또 앞으로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셔야 했는지…
  후에 안 일이지만 교장선생님은 그때 재간둥이가 많이 나와 전국에 소문이 자자했던 다른 도의 어느 한 소학교까지 찾아갔었다고 한다.
  선생님은 시를 잘 지어 온 나라를 깜짝 놀래웠던 그 소학교의 한 학생의 수업참관을 며칠씩이나 하셨다고 한다.
  나도 우리 부모들도, 그리고 학교의 선생님들도 교장선생님이 그때 낯선 지방도시에 왜 갔으며 어떻게 잠자리를 정했고 또 끼니는 제대로 들면서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다. 지금도 나는 모른다.
  출장지에서 돌아온 교장선생님은 나를 자주 데리고 다니였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는 농장에도 데리고 갔고 대동강가에도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글을 써보라고도 하시고 속셈문제도 내주면서 큰소리로 대답하게 하군 하였다.
  때로는 좀 멀리에 있는 공장도 견학시키군 하였다.
  공장로동자들 앞에서 시도 읊게 하고 노래도 부르게 하였다.
  그때는 더 이상 나는 《쭐난이》가 아니였던것이다.
  그러다가 늦어지는 날이면 교장선생님은 나를 업어서 집에 데려다 주군 하였다.
  부모들이 너무 고마워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이렇게 큰애를 없고오다니요…》라고 하면 교장선생님은 흔연히 《방울만 한 애이니 무겁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하군 하였다.
  그때는 우리 선생님에게 내가 《다 큰애》가 아니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