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춘몽
  남부아프리카에서 사는 줄루족의 뛰여난 기지력은 《한눈으로 웃는다》는 말을 만들어 거짓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꾸짖었다.
  솔직하고 겸허한 사람들은 한눈으로는 절대로 웃을수 없는 법이다. 
  조선의 북남을 갈라놓고있는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든다는 《해괴》한 구상의 제창자들은 지금 한눈으로 웃음지은채 세계여론을 혼란시키고있다.
  말장난으로 자기과시욕구를 충족시키고 주목을 받으려는 철없는 행위에 가소로움을 금치 못하면서 그 유래를 이야기하고저 한다.
  원체 조선반도의 38°선부근에 설치된 군사분계선은 19세기말엽 조선강점을 놓고 두차례나 전쟁을 벌린 일제에 의해 고안된것이다.
  짜리로씨야 외상 로마노브가 저술한 도서 《만주에서의 로씨야의 리권외교사》에 의하면 교활한 일제는 두 렬강이 《조선의 질서와 안녕의 유지》를 위해 이 나라를 분할하여 군사적으로 강점할 안을 세웠으나 각국의 당면리해관계에 의해 포기되였다.
  사건은 20세기 40년대중엽 일제의 패망으로 흘러간다.
  제33대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1945년 8월 10일 도꾜방송이 항복의사를 통고하자 국무장관 번스 등을 호출하여 일본의 항복접수, 일본군무장해제를 위한 책임지역설정, 조선반도진주문제를 론의하였다.
  이어 SWNCC(미국무성, 륙군성, 해군성 3성조정위원회)를 열고 대일작전종결과 일본의 항복접수를 위한 대안을 제출할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다. 
  초점은 조선주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미군이 담당하도록 할수 없겠는가 하는데 있었다.
  전조선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미국이 접수할데 대한 주장은 실천적으로 불가능하였으나 조선반도를 저들의 침략적야망실현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는 흉심은 조선반도의 북남분할선을 련합군점령지역으로 설정하는 선을 그어넣게 하였다.
  이것은 일제의 무조건항복을 받는데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아태지역의 전후문제처리를 저들의 리익에 맞게 다루기 위해서였다.
  결과 미륙군성 두명의 대좌가 도경계선도 표시되지 않은 극동축소지도를 놓고 북위 38°선을 미국, 쏘련의 《일본군무장해제분담선》으로 정하여버렸다. 
  특히 일본군의 항복접수, 무장해제는 련합국들사이에 해당 지역에서 일본군대를 제압한 나라가 하도록 약조가 되여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인민혁명군과 쏘련군이 일제군대를 격파한 조선땅에서 일본군의 무장해제에 미군이 나설 명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태평양지역 미륙군총사령관 맥아더에게 하달된 명령은 《일반명령 제1호》로 공포되였다.
  9월 8일에야 진주한 미군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항복하고 무장을 바치는 일본군을 맞게 되였으며 강점 첫날부터 38°선을 남조선영구지배와 전조선반도강점을 위한 침략의 전초선으로 간주하고 그 준비에 총력을 집중하였다. 
  산과 강, 하천, 벌판과 같은 자연지물은 물론 도시와 주민지대를 막론하고 지나가는 위도선인 38°선에 의해 조선반도에서는 122개의 마을과 27개의 면, 8개 군이 북과 남으로 갈라졌다. 
  군사분계선은 그 지역안의 514개 부락을 없애버리고 3개의 1등도로, 24개의 2등도로, 197개의 달구지길을 가로막고 북남을 련결하던 4개의 철길을 차단하였으며 송전선과 관개수로, 산줄기와 강줄기, 시내도 116군데가 잘리우게 되였다. 
  로맹 롤랑이 《진정한 평화는 전쟁의 주인을 제거할것을 요구한다.》고 한 말을 평화애호인민들은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군사분계선의 비무장지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국제평화지대로 만든다고 평화가 오는것이 아니라는것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은 자기를 평화의 천사로 둔갑하고 전쟁방화자의 본색을 가리려는 짓외에 아무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