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무용은 일찍부터 발생발전하여 이미 기원전부터 주변나라들에 알려져있었으며 세기를 두고 전해내려오면서 여러가지 갈래의 풍부한 유산들을 남겨놓았다.
  고대시기에는 집단적으로 모여 농업생산활동과 관련한 의식행사를 벌리군 하였는데 이때에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것을 고조선에서는 《무천》, 부여에서는 《영고》라고 하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시기 무용은 민간무용과 궁중무용으로 나뉘여지며 그 형식과 양상도 독무, 쌍무, 군무와 탈춤, 창춤, 칼춤, 북춤 등으로 다양하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동동춤》 등을 비롯하여 후세에 농악무로 발전한 두레놀이무용을 들수 있다.
  고려시기에는 무용의 형식과 그 형상수단들이 더욱 발전하였으며 전문적인 무용가들도 많이 나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통덕진출전무》를 비롯하여 《포구락》, 《헌선도》 등과 인민들이 창작한 《조천무》, 《처용무》, 궁중무용인 《북춤》을 들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춤양식이 다양해졌으며 《정대업무》와 같은 규모가 대단히 큰 작품들이 나왔다.
  특히 임진조국전쟁시기에는 왜적을 반대하고 봉건통치배들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감정이 반영된 민간무용들인 《강강수월래》, 《쾌지나 칭칭나네》, 《손벽춤》 등이 창조되였다.
  근대의 대표적인 무용작품으로는 《물장구춤》, 《박판춤》과 의병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한 《군바바춤》, 《무사의 춤》, 《의병춤》 등을 들수 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왜색왜풍의 탁류속에서 시들어가는 민족성을 고수하고 민족적인것을 발전시키려는 강렬한 모대김속에 조선민족무용의 현대화도 추진되였다.
  이때 《에헤라 놀아라》, 《마을의 풍작》, 《승무》, 《초립동》, 《감옥에 갇힌 춘향》, 《아리랑》, 《고구려의 전쟁무》 등 조선의 멋과 맛이 풍만한 춤들이 창조되였으며 조선무용이 세계 여러나라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도 수많은 무용작품들이 창작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몸소 창작지도하여주신 불후의 고전적명작 혁명가무《단심줄》과 《13도자랑》을 비롯하여 《될터이다》, 《총동원가춤》, 《기마병춤》, 《재봉대춤》 등 민족의 전통과 무장투쟁을 반영한 무용작품들이 창작되여 무용예술의 혁명전통을 마련하였다.
  해방후 위대한 주석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조선민족무용기본》이 정립되고 수많은 무용작품들이 창작창조되여 조선무용의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조선무용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독창적인 문예사상과 리론으로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내용을 담은 혁명적이고 인민적인 예술로 개화발전되게 되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 조선무용은 전성기를 맞아 《조국의 진달래》, 《눈이 내린다》, 《키춤》, 《사과풍년》과 같은 4대명작무용작품들과 민속무용《돈돌라리》, 민족무용조곡《계절의 노래》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명작무용작품들이 수많이 창조되였다.
  조선에서는 민족무용유산들과 명작무용작품을 비롯하여 무용예술의 창작적성과들을 표기화하여 보존리용하기 위한 사업에 관심을 두고 자모식무용표기법을 완성하였다.
  자모식무용표기법은 1988년 4월 평양에서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주최로 15개 나라의 무용가들과 무용표기전문가들의 참가밑에 처음으로 발표되였으며 1992년 9월에 진행된 국제무용리사회 제10차총회를 통하여 무용표기법의 과학성과 통속성이 확증되면서 이 표기법이 세계  모든 나라의 그 어떤 민족무용들은 물론 예술체조나 집단체조, 빙상휘거 등 운동분야의 모든 종목들을 다 표기할수 있다는것이 인정되였다.
  또한 대걸작품으로 완성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 《아리랑》, 《빛나는 조국》 등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무용들이 창조된것과 함께 조선무용은 더욱 풍부하고 새롭게 발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