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길은 군사복무를 마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양화장품공장의 조향사가 되였다.
  아들을 공장에 세운 주승만은 중앙식물원의 당시 중간시험공장에서 조향사로 일하다가 74살의 나이에 순직하였다.
  주리길은 아버지의 땀과 열정이 깃든 조향대를 자기삶의 초소로 정한 때로부터 끝없는 사색과 탐구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순간도 자신에 대한 요구성을 늦추지 않았다.  
  사실 조향사는 오감이 예민한 화학전문가들이다.
  매우 예민하고 독특한 직업인만큼 아무나 조향사가 될수 있는것이 아니다.
  세아들중에서도 그중 예민한 후각과 예술가적취미를 가진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주리길의 남다른 열정과 책임성이 그를 더욱 남다른 조향사로 될수 있게 하였다.
  주리길은 평양화장품공장에서 일한 40여년간 10여건의 발명권과 새기술도입증을 받았으며 독특한 향료배합으로 자기의 모습을 뚜렷이 하였다.
  특히 그는 천연향으로부터 조선사람들의 기호와 미감에 맞는 고상하고도 참신한 배합향료를 찾아내여 화장품생산에 도입완성함으로써 평양화장품공장의 연혁사에 지을수 없는 자욱을 새기였다.
  올해 74살인 주리길은 지금도 조향사의 일을 놓지 않고 젊은 연구사들의 사업을 도와주고있으며 더우기는 아들의 일을 적극 방조하고있다.
  조향사라면 후각으로 500가지 향은 가려내야 한다는것이 그의 지론이여서 그는 앉으나 서나 조향에 대해 늘 생각하고있으며 아들 또한 그렇게 하도록 떠밀고있는것이다.
  아버지의 이렇듯 꾸준한 노력과 탐구적자세와 일본새를 눈에 익히며 성장하였고 또한 남다른 요구성과 엄격한 생활규칙을 응당한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채찍질해온 그의 아들 주영만이기에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에 벌써 화장품전문가들속에서 기대가 촉망되는 조향사로 떠받들리우고있는것이다.
  오늘 평양화장품공장은 그의 할아버지 주승만이 일하던 생산협동조합의 그때로부터 참으로 눈부신 천지개벽을 이룩하였다.
  절세의 위인들의 손길아래 날로 변모되여가는 공장의 연혁속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땀과 열정도 슴배여있음을 누구보다 긍지높이 간직하고 사는 주영만이기에 그는 흘러가는 한초한초를 금같이 귀중히 여기며 맡은 연구사업에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다 바쳐가고있는것이다. 《은하수》제품들의 보다 눈부신 래일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