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8일 저녁, 자식들이 좋은 영화가 방영될거라며 끌어 텔레비죤앞에 마주앉았더니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의 로동계급편이 나왔다.
  이 영화가 천리마시대인간들, 로동계급에 대한 영화라는 인식이 컸던 나로서는 왜 하필 녀성들을 위한 날에 이 영화를 방영할가하는 의혹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전에 나는 웬간해서는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지 않군하였다.
  영화란 어디까지나 창작가들이 만들어낸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용이나 알면된다고 여기였기때문이다.
  그런데 차츰 나이가 들면서 영화의 인간들에게 자주 끌려들며 이전에 스쳐보았던 많은것에 대해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게된다.
  조선영화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쇠물집집안의 막냉이 강옥의 청신한 모습을 보며 이날도 나는 내가 왜 지금까지 《로동계급》이라고 하면 눈앞에 강선의 용해공도 포함하여 거쿨지고 억세인 남성들의 모습만 그려보군 하였을가 하는 생각에 미치였다.
  대바르고 억세고 건장한 사나이들의 뒤에 강옥이와 같은 여리고도 강직하기 그지없는 이 나라 녀인들의 눈물겨운 헌신이 고여있지 않던가.
  소박하면서도 꾸밈없고 희생적인 보석같은 그 성품들에 떠받들려 조선의 로동계급의 불굴의 투쟁정신은 더욱 굳세여졌고 년대와 년대를 이어오며 위대한 시대정신들을 창조한것이다.
  8일이후로 나는 저녁마다 꼭 꼭 텔레비죤앞에 마주앉았다.
  강태관일가와 쇠물집녀인들과 함께 하는 저녁이 기다려졌고 그들과 마음속이야기를 나누며 울게 되였다.
  죽어도 홀아비한데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던 처녀가 마침내 아들을 낳고 금시 행복을 알게 되는 때에 벼락같이 날아든 본처의 소식.
  한번 정을 맺은 남편을 찾아 고생고생 다 하며 방방곡곡을 헤매는 녀인의 심정도 갸륵하다.
  그 소박한 마음을 지켜주자고 쇠물내배인 자신의 젊은 인생을 누구도 알수 없는 남모르는곳에 깡그리 묻어버리는 강옥이의 30년세월은 고결함을 초월한것이다.
  한송옥은 자산계급출신이다.
  쇠물집가풍에 공감하고 매혹되면서도 선뜻 다가서지 못하던 그가 죽음을 눈앞에 둔 애인의 며칠간의 행복을 위해 일생을 홀로 살아야 할줄 알면서도 결혼까지 원한다.
  이 나라 녀인들의 깊고깊은 인정의 세계, 사랑의 세계에 정녕 솟구치는 눈물을 금할수 없고 전세대들에 대한 감탄과 존경에 머리가 숙어졌다.
  아들이 한켠에서 울고있는 내 모양을 민망히 바라보는듯 싶었다.
  좀 멋하여 《어머니세대에 대해서도 다 알수 없는 너희들이 전세대들의 고결한 세계를 얼만큼이나 리해하겠는지 걱정이구나.》고 제김에 한마디 하였더니 천연스런 아들의 대답은 참 뜻밖이였다.
  《그 영화가 끝나면 <우리집이야기>를 다시 보여드리지요.》
  순간 나의 눈앞에는 티없이 맑고 순진한 또다른 한 처녀의 얼굴이 대번에 떠올랐다.
  강선의 처녀어머니, 정말 놀라운 일치였다. 아니, 너무도 무디였던 내가 놀라운 발견을 또 한번 한것이다.
  결국 강선의 미풍은 천리마시대에만 있은것이 아니고 강태관일가의 녀인들과 같은 미덕의 녀인들은 오늘도 계속 태여나고있는것이다.
  녀인들만도 아니다. 오늘의 시대에 얼마나 많은 미덕의 인간들이 빛나고있던가.
  위험에 처한 동지를 구원하고저 제 한몸을 내대고 영예군인의 반려자가 되는가하면 부모없는 아이들의 친부모가 되고 생소한 늙은이들의 친자식이 되는 사람들, 지어 물에 빠진 두 아이중에 남의 아이를 먼저 건져내는 모습은 어느 순간에 누가 지어낼수도 없는것이다.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나 지향같은것은 달라질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돕고 이끌며 남을 위해 자신을 바쳐가는 내 나라 참인간들의 진모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으며 결단코 달라질수도 없다.
  바로 그러한 실재한 인간들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시대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탄생하는 참인간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는데 다름아닌 조선예술영화의 가장 큰 감화력이 있는것이다.
  부정할수 없는 사실에 기초한 영화만큼 실효성이 큰것은 없는법이기때문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이제야 깨치였다는 생각, 앞으로 현시대의 인간들을 더 많이 알기 위해서도 영화를 더 자주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