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대첩비는 1592~1598년 임진조국전쟁시기 정문부의병부대가 함경도지방에 기여든 왜적을 쳐물리친 력사적사실들을 기록한 승전기념비이다.
  1708년 함경도 북평사로 있던 최창대는 정문부의병부대의 투쟁내용을 새긴 비를 세울것을 발기하고 주동이 되여 비문을 짓고 비를 세웠다.
  높이가 187㎝이고 너비가 66㎝, 두께가 13㎝인 비의 앞뒤면에는 1 400여자의 옛글이 정교하게 새겨져있다.
  비문에는 왜적들의 침략경위와 반역자들의 준동, 정문부의병부대의 조직과정과 주요전투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서술되여있다.
  1904년 로일전쟁을 구실로 조선에 침입하였던 일본침략군 두목 이께다는 1905년 함경북도 림명역(오늘의 김책시)에서 이 비를 보고 이런 기념비가 이곳에 있으면 조선인민의 반일감정이 높아지고 조선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예속화책동에 불리하 다고 뇌까리면서 1906년에 극비밀리에 일본 도꾜로 빼가는 범죄를 감행하였다.
  그후 일본은 북관대첩비를 군국주의망령이 도사리고있는 《야스구니진쟈》구역안의 황량한 숲속에 내버려두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비우에 1t이상이나 되는 큰 돌을 올려놓았었다.
  6. 15공동선언발표후 민족의 통일열기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지는 속에 일본의 날로 로골화되고있는 력사외곡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의 일환으로 문화재반환운동이 힘있게 벌어졌다.
  그 결과 일본은 조선의 귀중한 력사유물인 북관대첩비를 돌려보내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2006년 3월 23일 일본에서 되찾아온 북관대첩비는 100년만에 본래위치인 함경북도 김책시 림명땅에 원상대로 세워졌다.
  북관대첩비는 일본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하는 산 증거물인 동시에 조선인민들을 애국주의, 민족제일주의사상으로 교양하는데 적극 이바지하는 민족의 재보이다.